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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에게 '함께하는 도전'이라는 평생의 추억을 선물하다 (ft. 피아노 포핸즈)

by 단단맘_B제이제이 2026. 1. 1.

형제, 자매, 남매 키우시는 분들, 하루에 몇 번이나 "그만 좀 싸워!"를 외치시나요?
저희 집 10살 아들과 7살 딸도 예외는 아닙니다.
눈만 마주치면 장난을 걸고,
"야, 저리 가라", "오빠가 먼저 그랬잖아!",
"엄마, 오빠가 내 거 만졌어!" 하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엄마를 판사로 소환하는 지극히 평범한, 아니 조금은 유난스러운 '현실 부산 남매'죠.
그런데 지난가을, 이 앙숙 같은 남매가 기적처럼 하나의 마음이 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계기는 우연히 제 아이폰으로 보여준 영상 하나 때문이었습니다.
<박보검의 칸타빌레>라는 프로그램의 클립 영상이었는데요. 작은 휴대폰 화면 속에서 배우 박보검 님과 노영심 님이 피아노 한 대에 나란히 앉아 '학교 가는 길'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서로 눈을 맞추며 웃고, 신나게 건반을 두드리는 그 행복한 표정에 아이들도 묘하게 빠져들더군요.
"어? 피아노는 혼자 치는 거 아니었어?"
늘 혼자서만 연주하는 악기인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이 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환상적인 화음을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신기하고 마법 같은 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슬쩍 미끼를 던졌습니다.
"얘들아, 이 곡 제목이 <학교 가는 길>이래. 딱 너희들 이야기 아니야?"
"제목이 학교 가는 길인 거 보니까, 아이들 치라고 만든 곡인가 봐.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배울 수 있다던데... 너희도 한번 해볼래?"
사실 엇박자가 많아 마냥 쉬운 곡은 아니었지만, 엄마의 "안 어렵대"라는 달콤한 꼬드김에 아이들의 귀가 팔랑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늘 혼자서만 치는 줄 알았던 피아노를 둘이서, 그것도 박보검 님처럼 칠 수 있다니 꽤 근사해 보였나 봅니다.
"진짜? 별로 안 어려워? 그럼 한번 해볼까?"
그렇게 엄마의 철저한 '큰 그림' 속에 시작된 남매의 좌충우돌 '포핸즈(4-Hands)' 도전기.
과연 매일 으르렁대던 이 남매는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을까요?

따로 또 같이: "빨리 같이 쳐보고 싶어!"

연습 과정은 생각보다 진지했습니다.
두 아이 모두 피아노 선생님께 각자 맡은 파트를 배정받고, 개인 연습에 돌입했거든요.

  • 7살 동생: 6살 때부터 꾸준히 쳐온 '실력파'답게 멜로디를 야무지게 익혀 나갔습니다.
  • 10살 오빠: 뒤늦게 피아노 재미에 푹 빠진 '열정맨'답게, 동생에게 뒤처지지 않으려 묵묵히 반주 파트를 연습했습니다.

저희 집 공부방에는 피아노가 딱 한 대뿐이라, 아이들은 서로 순서를 정해 번갈아 가며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평소 같으면 "내가 먼저 칠 거야!" 하고 싸웠겠지만, 이번엔 달랐습니다.
오빠가 연습할 때면 동생이 공부방 문 너머로 들리는 반주 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하고, 동생이 멜로디를 칠 때면 오빠가 흥얼거리며 박자를 맞춰보기도 했죠.
"엄마, 나 이제 다 외웠어! 오빠랑 같이 맞춰보면 안 돼?" "나도 다 했어. 이제 합체해 보자."
따로 연습한 퍼즐 조각을 빨리 맞춰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아이들의 모습. 그 설렘 가득한 눈빛을 보니, 이미 연주회는 반쯤 성공한 것 같았습니다.

불협화음: "따로 칠 땐 완벽했는데..."

하지만 문제는 두 아이를 피아노 한 대에 동시에 앉혀 놓았을 때였습니다.
각자 따로 연습할 때는 완벽했는데, 막상 둘이 합치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누가 특별히 못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난생처음 어깨가 닿을 만큼 딱 붙어 앉은 어색함, 그리고 내 손가락 움직이기도 바쁜데 옆 사람의 리듬과 멜로디까지 신경 써야 하는 멀티태스킹의 압박.
"좀 비켜봐. 칠 자리가 없잖아."
"오빠 팔이 자꾸 넘어오니까 그렇지!"
분명 아까까진 잘 쳐지던 곡이, 둘이 합치기만 하면 엉망진창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서로의 소리를 즐기기는커녕, 틀리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한 채 숨 막히는 눈치 게임을 하는 꼴이었죠.
피아노 의자 하나를 두고 벌이는 미묘한 영토 분쟁 같았달까요?

하모니: "혼자보다 둘이라서 좋은 이유"

하지만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더군요.
그 어색하고 힘든 과정을 하나의 '놀이'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처음엔 박자가 꼬여서 멈추기 일쑤였지만, 반복할수록 서로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내 멜로디가 비는 공간을 오빠의 저음 반주가 꽉 채워주고, 오빠의 리듬 위에 내 연주가 얹어질 때 느껴지는 그 꽉 찬 풍성함.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돋보이는 것보다, 우리가 함께 완성해 가는 과정이 훨씬 짜릿하다는 것을요. 서로의 팔이 부딪히면 씩 웃어넘기고, 눈빛으로 박자를 세는 여유까지 생겼습니다.

D-Day 아침: 알람 소리 대신 들린 피아노 소리

드디어 대망의 연주회 당일 아침이 밝았습니다.
평소 주말 아침이라면 "일어나라! 해 중천에 떴다!"
소리를 열 번은 질러야 겨우 눈을 비비며 나오는 녀석들인데, 이날은 달랐습니다.
"얘들아, 일어나야지~"
평소라면 이불속으로 더 파고들었을 녀석들이, 제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적처럼 한 번에 벌떡 깨어나는 게 아니겠어요?
주말 아침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란 것도 잠시, 공부방에서 익숙한 피아노 선율이 들려오더군요.
가보니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머리는 자다 일어나서 까치집을 짓고, 눈곱도 떼지 않은 팅팅 부은 얼굴로 잠옷 바람의 두 아이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 둘, 셋 하면 들어와." "오케이."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눈 뜨자마자 피아노 앞으로 달려가 짧고 굵게 호흡을 맞추는 모습.
비록 몰골은 엉망이었지만, 그 뒷모습에서만큼은 조성진 님 못지않은 비장함과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는데 저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하더군요.

클라이맥스: 가을바람 흩날리는 야외 정원에서의 연주

이번 연주회는 특별하게도 예쁜 카페 야외 정원에서 열렸습니다.
날씨마저 우리를 돕는 듯, 환상적인 가을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가 긴장된 표정으로 야외무대 위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4-hands 피아노 연주를 하는 남매
가을 콘서트에서 <학교 가는 길을>을 연주하는 남매

 
아침에 잠옷 바람으로 맞췄던 그 경쾌한 <학교 가는 길> 멜로디가 정원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바람이 불어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건반 위로, 아이들 머리 위로 흩날려 떨어지더군요.
마치 영화 속 특수 효과처럼 흩날리는 낙엽 아래서, 아이들은 연습 초반의 어색함 따위는 잊은 채
온전히 '한 팀'이 되어 연주했습니다. 박보검과 노영심 님 못지않은, 아니 그 풍경 속에 녹아든 남매의 모습은 제 눈에 세상 그 어떤 명화보다 아름다웠습니다.
마지막 건반을 동시에 떼고 일어나 인사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가을 햇살보다 더 환한 "우리가 해냈어!"라는 성취감이 가득했습니다.

"남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함께하는 추억'"

무사히 연주회가 끝나고 긴장이 풀린 채 집에 돌아오는 길. 무뚝뚝한 부산 남매라 그런지 "오빠 덕분이야", "우리 정말 잘 맞았어" 같은 드라마 속 대사 같은 간지러운 말은 오고 가지 않습니다.
대신 아주 현실적인 대화가 오고 갑니다.
"아, 베라에서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응, 난 베리베리스트로베리!"
긴장이 풀리자마자 먹을 것부터 찾는 아이들.
말은 무심하게 툭 던지지만, 저는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아이들의 표정에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상기된 두 볼과 평소보다 한 톤 높아진 목소리,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를 바라보며 짓는 장난스럽지만 뿌듯한 미소.백 마디 말보다 그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우리 오늘 좀 멋졌어. 같이 하니까 꽤 재밌네.'라고요.
강산이 두 번 변해 20년 뒤 어느 날. 30살이 된 의젓한 아들과 27살이 된 예쁜 딸이,
다시 한번 이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학교 가는 길>을 연주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때 들리는 피아노 소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깊고 아름답겠죠?
형제, 자매가 있다면 '함께' 무언가에 도전하는 기회를 만들어주세요.
엄마가 슬쩍 "이거 안 어렵대~" 하고 미끼만 던져주시면 됩니다.
그 과정에서 쌓이는 전우애(?)와 추억은 부모가 줄 수 없는, 형제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빛나는 보물이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