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제니가 인증샷 날린 곳 이라는데..."
아이와 함께 호주 시드니의 명소, 블루마운틴에 다녀왔습니다. 유칼립투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푸른빛,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리고 인생 샷 명소라는 '링컨스락(Lincoln's Rock)'까지. 특히 이곳은 블랙핑크 제니가 다녀간 곳으로도 유명하죠. 그 얘기를 해주니 아이들이 처음엔 눈을 반짝이더군요.
"엄마, 진짜 제니 언니가 여기서 사진 찍었어?" 호기심에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인증샷도 몇 장 찍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들의 관심은 딱 10분을 넘기지 못했습니다.
"엄마, 근데 그냥 절벽이네. 다리 아파, 이제 가자." 어른 눈에는 웅장한 대자연이지만, 아이들 눈에는 그저 '엄청 큰 돌덩이'일 뿐이었나 봅니다. 슬슬 칭얼거림이 시작될 무렵, 가이드님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시더군요.
"자, 이제 링컨스락보다 더 재밌는 거 보여줄게. 패키지 버스는 절대 못 들어가는 비밀 장소란다."
반신반의하며 따라간 그곳에서, 저희 아이는 이번 호주 여행 중 가장 빛나는 눈망울을 보여주게 됩니다.
갑자기 웬 해바라기씨?
차는 Katoomba 지역의 한 도로변에 멈춰 섰습니다. 내비게이션 주소로는 [102B Cliff Dr, Katoomba NSW 2780]입니다.. 유명한 전망대인 'Cahill's Lookout' 근처였지만,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메인 스팟과는 거리가 먼, 아주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가이드님이 '해바라기 씨' 한 줌을 꺼내 아이 손에 쥐여주시며 아주 중요한 주의 사항을 일러주셨습니다.
“ 얘들아, 겉옷으로 손을 이렇게 감싸봐, 그 위에 내가 해바라기 씨를 얹어 줄게”
그러고는 얼마지 않아 어디선가 "끼룩!"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날개들이 퍼덕이며 우리 머리 위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호주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야생 앵무새, '코카투'였습니다. 머리 위에 노란 벼슬이 왕관처럼 솟아 있는, 아주 우아하고 예쁜 새들이었죠.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되었죠. 앵무새 부리가 생각보다 날카롭고 힘이 세서 씨앗 까먹다가 손바닥까지 꼬집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야생조류 맞나요? 사람을 경계하기는커녕,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아이의 팔 위에, 어깨 위에, 심지어 머리 위에도 툭 하고 내려앉는 겁니다.
"으악! 엄마! 무거워!" 처음엔 아이가 깜짝 놀라 움츠러들었습니다. 동물원에서 유리창 너머로만 보던 새가 내 몸에 닿았으니까요. 하지만 옷으로 손을 감싼 덕분에 발톱의 따가움은 덜했고, 묵직한 생명의 무게감만이 오롯이 전해졌습니다. 그건 책이나 유튜브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생명의 '무게'였습니다.

껍질 까기 장인들의 식사 예절
가장 놀랍고 재미있었던 건 녀석들의 식사 장면이었습니다. 가이드님 말씀대로 옷으로 손을 감싸길 정말 잘했더라고요. 녀석들이 아이 손바닥에 있는 해바라기 씨를 부리로 콕 집어가더니, 정말 눈 깜짝할 새에 '탁!' 하고 껍질을 까먹는데 부리 힘이 어마어마했습니다. 맨손이었으면 정말 따끔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오독, 오독. 아이의 어깨 위에 앉아서 부리와 혀를 이용해 껍질은 '퉤' 하고 뱉어내고, 고소한 알맹이만 쏙 골라 먹는 기술이라니! 그 모습을 바로 10cm 거리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엄마! 얘가 껍질은 안 먹고 맛있는 것만 먹어! 나보다 더 잘 까!"
아이는 신기해서 어쩔 줄을 몰라했습니다. 앵무새가 씨앗을 까먹고 나면, 아이는 또다시 주머니에서 씨앗을 꺼내 손을 뻗습니다. 링컨스락에서는 10분 만에 지루해하던 아이가, 이곳에서는 30분이 넘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남의 인생샷 보다 중요한 것
육아를 하다 보면 '교감(Communion)'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합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자라는 우리 아이들이 진짜 자연과 교감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요? 키즈 카페의 장난감이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풍경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호주의 길가에서, 아이는 특별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먹이를 주자, 하늘을 날던 야생의 새가 '나를 선택해서' 내려와 앉았다는 사실. 이 작은 상호작용이 아이에게는 엄청난 성취감과 기쁨을 주는 듯했습니다.
처음엔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던 아이가, 나중에는 앵무새 두 마리를 양팔에 올리고 "엄마, 나 봐봐! 내가 밥 주고 있어!"라며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오늘 여행은 이거 하나로 성공이다.'
블랙핑크 제니가 다녀간 풍경보다, 작은 새의 체온을 느끼고 먹이를 나눠준 이 30분의 기억이 아이의 마음속에 훨씬 더 깊고 따뜻하게 남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Outro] 부모님들을 위한 여행 팁
혹시 아이와 함께 시드니 블루마운틴 여행을 계획 중이신가요? 그렇다면 링컨스락에서 인증샷만 찍고 오지 마시고, 꼭 이 좌표를 기억해 주세요.

- 장소: Cahill's Lookout 인근 도로변
- 주소: 102B Cliff Dr, Katoomba NSW 2780, Australia
- 필수 준비물 1: 해바라기 씨 한 봉지
- 필수 준비물 2: 두꺼운 긴 팔 옷 (가이드님 팁! 앵무새 부리와 발톱으로부터 손을 보호하기 위해 소매로 손을 덮어주세요.)
블루마운틴 투어 후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들를 수 있는 위치입니다. 단독 투어 가이드님과 함께라면 넌지시 부탁해 보세요. "아이에게 앵무새를 보여주고 싶은데, 102B Cliff Dr 쪽에 잠깐 세워주실 수 있나요?"
아마 가이드님도 센스 있는 엄마라며 엄지를 치켜세우실 겁니다. 아이에게 평생 잊지 못할 '살아있는 자연'을 선물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