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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수학도 바쁜데 왠 사자소학?"

by 단단맘_B제이제이 2026. 1. 12.

얼마 전 신문 기사를 보는데, 서울시교육청이 올해 초등 교육의 최우선 목표로 '인성(人性)'을 꼽았다는 거예요. 솔직히 저는 그 기사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릅니다. 챗GPT가 코딩도 하고 그림도 영상도 뚝딱 만들어내는 AI 시대가 도래하였으니, 당연히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창의 융합 인재를 키우겠다" 혹은 "최첨단 디지털 교육을 강화하겠다" 이런 게 교육 목표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게 시대의 흐름 같아 보이니까요.
그런데 사람다운 인성 갖춘 인재 배출이 교육청의 목표라니…. 결국 기계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우리 아이들이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진짜 경쟁력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 됨됨이'라는 걸 확인받은 기분이라 속이 다 시원하더군요. 싫든 좋든, 옳든 그르든 이제 우리는 AI와 공생해야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AI라는 그 강력한 도구를 손에 쥔 사람의 '그릇'이 얼마나 단단한지가 결국 아이의
미래를 결정짓겠구나.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지만, 그걸 올바르게 쓰는 힘은 결국 '변하지 않는 기본기'에서 나오니까요.
"그래, 도구(AI)를 가르치기 전에, 도구를 다룰 '주인'부터 제대로 만들자."
이 확신을 가지고 바로 서점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위즈덤하우스에서 나온 <인성 쑥쑥 한자 쑥쑥 초등 사자소학> 한 권을 집어 들었죠.
 

"아니, 영어 수학도 바쁜데 왠 사자소학?"

이 책을 보고 주변에서 알면 아마 이럴 겁니다. "방학이라 진도 빼기도 바쁜데 왠 사자소학?"
시대역행이라 하실 수 있지만 확신합니다. 이 책 속에 담긴 2,000년 묵은 지혜가, 내 아이를 가장 사람답게,
그리고 단단하게 만들어 줄 거란 것을요. 저도 공부해 본 적이 없고, 인성을 글로 공부한다는 것이 살짝 어색하긴 합니다.하지만 글로도 공부를 하지 않는 세대의 결과가 바로 오늘날 '똑똑한 괴물'만 넘쳐나는 위태로운 현실이 아닐까 싶어서요.머리는 비상한데 가슴은 차가운, 지식은 넘치는데 배려는 없는 그런 모습들 말이죠. 
사실 저만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닐 겁니다.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다들 밤에 자는 아이 얼굴 보면서 한 번쯤은 생각하잖아요. '공부 좀 못해도 좋으니, 어디 가서 욕 안 먹고 사랑받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알고 보니 주변에 교육 좀 시킨다는 현명한 엄마들은 이미 조용히 실천하고 계시더군요. 영어 학원 숙제보다 더 무섭게 챙기는 게 바로 '고전 읽기'였습니다. 저도 그 대열에 슬쩍 합류한 셈이죠.

"엄마, 부생아신(父生我身)이 뭐예요?"

처음 책을 펴고 아이와 함께 읽었을 때, 아이 반응은 예상대로였습니다.
"엄마, 말이 너무 어려워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하지만 이게 바로 제가 노린 포인트였습니다. 사자소학은 단순한 예절 교과서가 아닙니다.
초등 공부의 핵심인 '문해력 수업'의 끝판왕이죠.
요즘 아이들, 글자는 읽는데 뜻을 모르는 '실질적 문맹'이 정말 많습니다.
우리말의 70% 이상이 한자어인데, 한자를 모르니 3학년만 돼도 교과서 읽기를 힘들어합니다.
사자소학을 달달 외우게 시키는 게 아닙니다. 하루에 딱 8글자, 소리 내어 읽고 그 뜻을 풀어줍니다.
'부모(父母)', '형제(兄弟)', '붕우(朋友)'... 이 기본적인 단어들의 속뜻을 이해한 아이는, 나중에 학교 가서 '효도', '우애', '교우 관계' 같은 추상적인 개념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아, 그거 사자소학에서 봤던 그거네!" 하고 무릎을 치죠. 영어 단어장 100개 외우는 것보다, 이 기초 공사가 훨씬 남는 장사입니다.
 

이 책을 고른 이유 (feat. 만화)

서점에 사자소학 책이 수십 권인데 굳이 송재환 선생님의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만화' 때문입니다.
이 책은 어려운 한자 나오기 전에 재밌는 만화로 상황을 먼저 보여줍니다.
"형이 콩 한쪽도 동생이랑 나눠 먹는 장면"을 만화로 먼저 가볍게 내용을 파악한 후에, 한자의 뜻과 음 '형우제공(兄友弟恭)'을 읽으니까 아이가 거부감 없이 쑥 받아먹더라고요. 저자가 현직 초등 교사라 그런지, 설명도 아이들 눈높이에 딱입니다. 쓰기 노트까지 있어서 악필 교정까지 되니 1석 2조고요. 

송재환 선생님의 사자소학 책
겨울방학동안 사자소학을 공부하다.

 

사실, 엄마인 제가 더 많이 배웁니다

처음엔 아이에게 "이거 읽어봐, 좋은 내용이야" 하고 가르치려는 마음으로 책을 폈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한 구절 한 구절 소리 내어 읽다 보니, 오히려 어른인 제가 더 숙연해지는 순간이 많더라고요.
'부생아신(父生我身) 하시고 모국아신(母鞠我身)이로다.'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셨다.),
'은고여천(恩高如天) 하시고 덕후 사지(德厚似地)하시니...'
(은혜는 높기가 하늘과 같고 덕은 두텁기가 땅과 같으니...)
어릴 때는 관심도 없고 이해 조차 해보려 하지 않았던 구절들이 나이를 먹고고 부모가 되어 읽으니 왜 그리 사무치던지요. 이 책은 아이들을 위한 학습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삶의 지혜' 그 자체였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참 무섭습니다. 묻지 마 폭행, 패륜 범죄, 혐오가 판치는 세상...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만약 우리 사회의 모든 어른이, 그리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이 책에 담긴 '기본적인 마음'을 조금이라도 함께 공부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뉴스에 나오는 그 끔찍한 사건사고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마저 들었습니다.
하루 딱 10분. 혼란한 세상 속에서 아이와 제가 중심을 잡고 '어떻게 사는 게 바른 삶인지' 마음을 씻어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이번 겨울방학, 남들 다 하는 영어 학원도 좋지만 낡은 지혜가 담긴 책 한 권 선물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이 'Old 한' 가치들이야말로, 험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를 지켜줄 가장 든든한 방패이자 가장 세련된 무기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