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면서 어느 날 문득, 등골이 서늘해지는 '섬뜩한 깨달음'이 온 적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아이와 나누는 '대화 주제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퇴근 후 저녁 식사 시간, 혹은 주말에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아이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떠올려보았습니다.
"오늘 학교에서 뭐 먹었어?"
"학원 숙제는 다 했니?"
"친구랑 싸우지는 않았고?"
이게 전부였습니다. 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저희 아이는 학교에서 친구들과 종일 야구 이야기만 하고, 집에 와서도 "엄마, 오늘 롯데 윤동희희가..." 하며 야구 이야기만 늘어놓습니다.
물론 좋아하는 분야가 있는 건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 아이의 세계가 딱 여기, '야구'와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매일 만나는 친구, 매일 보는 가족, 그리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아이의 관심주제가 확장 되지 못하고, 이 좁은 틈바구니에 갇혀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스마트폰은 '창문'이 아니라 '거울'이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유튜브로 웬만한 건 배우던데? 웬만한 소식도 나보다 더 빨리 알더라?!”
그냥 그렇더라 수준으로 끝낼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은 아이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넓은 '창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계속 비춰주는 좁은 '거울'에 가깝습니다. 바로 무서운 '알고리즘' 때문이겠죠?
야구 영상을 한 번 본 아이에게 유튜브는 기가 막히게 야구 영상만 추천합니다. 로블록스를 검색한 아이에게는 게임 영상만 주야장천 띄워줍니다. 이걸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하더군요.
음식에 비유하자면 편식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조금 과장되게 얘기해서 이렇게 편식만 하다 보면 역사, 경제, 국제 정세, 환경, 예술 등 다른 분야의 정보나 지식은 아이의 세계로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지 않을까요?
야구는 좋아하면서 축구 경기는 몇 명이서 하는지 아예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 아이에게 다른 것도 좀 쳐다봐
라고 말로만 한들 바뀌겠습니까?.
부모가 억지로 꺼낼 수 없는 이야기들
"그럼 엄마가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면 되잖아?" 하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밥 먹다가 뜬금없이 부모가 이런 주제를 꺼낼 수 있을까요?
"아들아, 요즘 지구 온난화 때문에 북극항로가 열리고 있다는데 경제적으로 어떤 이득이 있을까?"
"지구 밖 우주에서 제약 실험을 하면 중력이 없어서 효과가 훨씬 좋대."
"미국의 금리가 오르면 왜 우리나라 아파트 대출 이자가 비싸질까?"
"우리나라 군사력이 세계 몇 위인지 아니?"
아마 아이는 "엄마, 왜 그래? 갑자기 내가 모르는 얘기를 왜 해?" 하며 시작부터가 꼬여버릴 수 있습니다.
부모가 어지간히 교육에 열정적이지 않고서야, 일상생활에서 이런 '확장성 있는 주제'를 자연스럽게 꺼내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스트레스니까요.
신문을 쥐여주니 '판'이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선택한 해결책은 잔소리가 아닌 환경 변화였습니다.
정치에 관한 뉴스를 듣다가 질문이 생겼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이에게 어린이 신문(주니어 생글생글)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편식 밥상 대신, 세상의 다양한 소식이 골고루 담긴 '영양가 있는 균형 잡힌 식단'을 차려준 것이지요. 효과는 생각보다 즉각적이었습니다.
"엄마! 우주에서는 단백질 결정이 더 잘 만들어진대. 그래서 우주 공장을 만든다는데?"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우리나라 수출이 달라진대. 진짜야?"
자신이 생각할 때 흥미로운 기사는 요약을 해서 알려주기도 하고, 기사의 글이 사실인지 되묻기도 했습니다.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야구와 게임 얘기만 하던 아이가, 신문이라는 창문을 통해 우주, 경제, 과학, 국방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엄마가 애써 주제를 찾지 않아도, 신문이 매일매일 새로운 주제를 던져주니 밥상머리 대화의 '판'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읽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어린이 신문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 신문 구성 정도면 주변에 추천해도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주니어 생글 생글'에는단순히 기사만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정보를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장치들이 있기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냥 글만 읽으면 금방 까먹습니다. 하지만 신문 곳곳에는 '참여형 코너'가 있습니다.
- 한자 쓰기 & 낱말 퍼즐: 기사에 나온 핵심 어휘를 가로세로 퍼즐로 풀고, 한자로 직접 써봅니다. "엄마, '금리'가 한자로 이런 뜻이었어?" 하며 어휘력을 다집니다.
- 시사 퀴즈: 방금 읽은 내용을 O, X 퀴즈로 풀며 팩트 체크를 합니다. 이해했는지 바로 확인이 가능하죠.
- 논술형 문제: "네가 만약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면?" 같은 질문에 답을 적습니다.
- 영어 뉴스 칼럼: 뉴스 기사를 쉽고 간결하지만 유용한 표현이 많아서 영어 공부하기에 좋습니다. 또 제공된 QRcode로 수능형 문제까지 풀어 볼 수 있습니다.
그냥 눈으로 쓱 읽는 것에 끝내지 않고 연관 활동까지 할 수 있으니, 하나의 알찬 워크북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제가 보는 경제지에 그냥 딸려오는 부록이니 돈이 따로 들지도 않습니다.
신문이 재밌게 느껴지는 이유
물론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아이가 안 읽으면 종이 쓰레기일 뿐입니다. 저도 처음엔 읽어낼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거부감 없이 신문을 펼쳤습니다. 요즘 어린이 신문은 퀄리티가 장난이 아닙니다.
빽빽한 줄글 대신, 기사 내용을 요약한 고퀄리티 삽화와 만화가 지면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아이는 마치 학습 만화나 그림책을 보듯이 자연스럽게 접근하더군요.
제 개인적인 생각엔 저희 아이가 읽기 훈련(책통클럽)이 잘 되어 있어서 그 덕을 본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기본적인 읽기 체력이 되어 있으니, 그림이 재밌어서 보다가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서 글까지 읽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고 믿고 있습니다. 만약 읽기가 훈련되지 않았다면 그림만 보고 덮었겠지만, 아이는 텍스트까지 거부감 없이 소화해내고 있습니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갇혀 좁은 세상만 보던 아이가 신문을 통해서 세상에 대한 관심의 범위와 그 폭이 점점 확장되어 가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계속 신문을 즐겨보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논술을 시작할 준비가 자연스럽게 되어 있지 않을까요?
조금스레 그렇게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