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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행 페리에서 목격한 '자매의 수학 문제집'

by 단단맘_B제이제이 2025. 12. 28.

여행 가방을 쌀 때 아이들이 풀 문제집을 챙긴다고 한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애가 불쌍하지도 않아? 여행에서까지 꼭 공부를 시켜야 해? 이 엄마 독하네!"

사실 저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여행은 놀고먹고 쉬러 가는 거니까요.

하지만 몇 년 전,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페리 안에서 목격한 장면 하나가 제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그날, 페리 식당칸에서 본 충격적인 장면

배가 출발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고, 저녁을 먹기에도 어정쩡한 시간이었습니다.

페리 내에 식당칸 한구석에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자매가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아이들은 식탁 위에 수학 문제집을 펴놓고 풀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옆에서 도끼눈을 뜨고 감시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지금은 할 일을 하는 시간'이라는 듯 너무나 평온하고 자연스럽게 연필을 움직이고 있었죠.

그 순간,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다른 또래 아이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창밖의 멋진 바다 풍경을 감상하거나 사색에 잠겨 있었을까요? 부모님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까요?

아니요. 99%는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유튜브를 보고 있거나 게임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여행지에서 공부를 안 시킨다고 해서, 아이가 더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는 건 아니구나.

그저 '죽은 시간'을 스마트폰으로 때우고 있을 뿐이구나."

여행지에서 '버려지는 시간'

여행은 이동의 연속이지 않습니까? 기차나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식당 웨이팅, 체크인 전 대기 시간...

이'자투리 시간'에 우리는 관습적으로 스마트 폰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를 묵인합니다.

"좀 조용히 하고 가만히 있어" 하면서요.

하지만 그 자매는 그 시간을 '루틴을 지키는 시간'으로 쓰고 있었습니다.

어느새 수학 문제를 다 푼 아이들은, 배가 출발하자 문제집을 덮고 그 누구보다 신나게 갑판으로

나가 갈매기에게 과자를 던져져 주며 놀았습니다.

할 일을 끝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홀가분함이 저에게 까지 전달 되는 것 같았습니다.

반면 유튜브를 보던 아이들은 부모가 스마트폰을 뺏들자 "아, 더 볼래! 왜 그래!" 하며 짜증을 냈죠.

과연 누가 더 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던 걸까요?

여행 중 학습 루틴을 지킬 수 있는 최적은 시간은 언제?

그렇다면 여행 중 언제 학습지나 독서를 시키는 게 좋을까요?

제가 강력 추천하는 타이밍은 바로 '조식 먹고 난 직후'입니다.

호텔 조식을 먹고 방에 들어오면 아이들을 가장 먼저 씻기고 옷을 갈아입혀 놓습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엄마가 씻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하죠.

보통 이 시간에 아이들은 할 게 없어서 침대에서 뛰거나 "언제 나가? 심심해!"라며 보채기 일쑤입니다.

결국 "TV 보고 있어"라며 리모컨을 주게 되죠.

바로 이때가 기회입니다. 말끔하게 옷을 입은 아이들을 책상에 앉히고 미션을 줍니다.

"자, 엄마가 씻고 준비하는 동안 딱 이것만 풀자. 다 풀면 바로 수영장 출발이야!"

아이들은 '나가서 놀아야 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합니다.

덕분에 엄마는 아이들의 방해 없이 아주 평화롭고 우아하게 화장을 하고 짐을 챙길 수 있습니다.

엄마의 외출 준비 시간과 아이의 공부 시간을 맞바꾸는 것, 이것이 서로 윈윈하는 최고의 전략입니다.

여행 중 조식 후에 숙제를 하는 아이들
여행지가 어디든 조식 후에는 숙제를 하는 아이들, 숙제 그날 일정을 행복하게 소화 할 수 있어요.

여행 다녀온 후의 '지옥'을 예방합니다.

사실 여행지에서 학습지를 펴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여행을 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학원이나 학교를 빠지는 경우가 생깁니다.

달콤한 여행에서 돌아오면 빠진 만큼의 보강을 잡아야 하고,

밀린 숙제를 연달아서 해치워야 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여행의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숙제 폭탄을 맞이하는 것, 그건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지옥입니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매일 조금씩 그 분량을 덜어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루에 수학 2장, 독서 한 권 등 작은 노력이 쌓이면, 돌아왔을 때 '메꿔야 할 구멍'이 현저히 줄어듭니다.

"놀 땐 놀더라도, 미래의 나에게 빚은 남기지 말자." 이렇게 여행에서도 해야할 일을 조금씩 해 두면

여행 후 일상 복귀가 놀랍도록 수월해집니다.

 "내 짐은 내가 챙겨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팁입니다. 저는 여행 짐을 쌀 때, 학습지를 제가 몰래 챙기지 않습니다.

아이들에게 각자 작은 백팩을 하나씩 준비해 줍니다. 그리고 스스로 여행에 챙겨가고 싶은 물건과

더불어 공부할 책과 필기구를 챙기게 시킵니다.

"이번 여행에서 네가 풀 학습지, 읽을 책, 그리고 연필이랑 지우개는 네 가방에 직접 넣어."

엄마의 큰 캐리어 구석에 처박혀 가는 문제집과, 내 등에 멘 가방에 들어있는 문제집은 아이가 느끼는 무게감이 다르겠죠?

여행에서는 엄마가 꼭 짬나는 시간을 알려주며 챙겨온 학습지나 책을 가방에서 꺼낼 타이밍을 알려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방을 열어보지도 않은채 마음만 무겁게 돌아오게 될 뿐입니다.

엄마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가 챙겨온 나의 여행 준비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 읽을 책을 꼭 챙겨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며 이 멋진 습관을 길러주고 싶습니다. 

"여행은 일상의 도피가 아니라, 일상의 확장이다."

그날 페리에서 본 자매는 저에게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진짜 잘 노는 사람은, 할 일을 마치고 노는 사람"이라고요.

어차피 엄마가 준비하는 동안 버려질 시간, 그리고 돌아와서 갚아야 할 숙제의 빚,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아이의 작은 가방 속 얇은 문제집 한 권입니다.

이번 휴가, 아이에게 스마트폰 대신 자신만의 배낭을 메게 해보세요.

숙제를 마친 아이가 바라보는 여행지의 풍경은, 스마트폰 화면보다 훨씬 더 선명하고 아름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