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되면서 세상 물정을 알게 해 주려고, 아이에게 체크카드를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명절에 받은 용돈을 넣어두었으니 꼭 필요한 곳에 써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카드 승인 문자가 뜰 때마다 사용처를 확인해 보니 예상대로 편의점 아니면 문방구였습니다. 한 번씩 여기에서 무엇을 샀냐라고 물어보면 죄다 군것질을 했다고 했고, 상품명을 들어보니 평소에 내가 사주지 않던 에너지 드링크나, 띠부실에 현혹되어 산 빵이나 과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초반에는 엄마의 눈치를 좀 살피는 것 같아서, 배가 고파 군것질을 했다는 아이에게 굳이 잔소리를 해야 할까 고민하다 한 동안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 아들은 편의점 VIP가 되었고, 동네에서 우리 아들을 모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없을 정도가 되니 이제는 돈을 가치 있게 쓰는 법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엄마, 나 로봇 코딩 대회 나가면 안 돼?"
얼마 전 코딩 학원에서 돌아온 아들이 방학 동안 '로봇 코딩 대회 준비반'이 열리는데, 자기도 꼭 참여해서 대회에 나가보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특한 마음도 잠시, 안내문을 보고 저는 현실적인 고민에 빠졌습니다. 비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순 수업료뿐만 아니라 대회 연습용 코딩 소프트웨어 대여비, 자율주행 모빌리티 장비 사용료까지 거의 40만 원에 육박하는 큰돈이 필요했습니다.
부담스럽지만 아이가 원하니 하게 해 줄까 잠깐 망설였지만, 이번엔 마음을 달리 먹었습니다. 적지 않은 금액이기도 했고, 아이에게 돈의 무게를 가르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40만 원은 엄마 월급의 1/15이야!"
저는 아이를 식탁에 앉히고 진지하게 협상을 시도했습니다. 우선 이 돈의 크기부터 설명했습니다.
"아들아. 4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야. 무려 엄마 월급의 15분의 1이나 되는 큰 금액이라고. 엄마가 하루 반나절을 일해야 벌 수 있는 거금이야. 솔직히 엄마한테도 이 40만 원은 굉장히 부담스러워."
아이의 눈에서 살짝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엄마 카드는 엄마의 기분에 따라 언제나 무한대로 긁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엄마에게도 '부담스러운 큰돈'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동생도 학원을 다녀야 하잖아. 투자의 기본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엄마는 너희 둘에게 공평하게 투자해야 해. 너한테만 몰빵 할 수는 없어."
그리고 제안을 던졌습니다.
"대신 엄마가 널 도와줄게. 대회 참가비랑 숙박비는 엄마가 낼게. 이 '준비반 수업료'는 네 용돈으로 직접 결제해. 네가 정말 원한다면 그 정도 투자는 해야지?"

돈은 '숫자'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동안 아이는 돈을 '숫자'로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장에 들어있는 40만 원, 50만 원이 있어봤자 아이에게는 그저 게임 스코어처럼 느껴졌을 겁니다.. 그 돈이 현실에서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는지, 엄마마가 그 돈을 벌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지 전혀 감이 없죠.
통장의 숫자가 '0'을 향해 곤두박질치는 공포를 경험해 봐야, "아, 내 피 같은 돈!"이라는 현실 감각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아이는 잠시 말이 없었는데, 아마도 처음으로 40만 이면 자기가 늘 사먹던 과자, 아이스크림 그리고 에너지 드링크를 얼마나 먹을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큰돈이 한 번에 사라지는 것에 대한 상실감을 느껴보았을 것입니다.
협상 테이블에 앉은 우리 아들은 어떤 결정을 했을까요?
코딩 대회에 나가고 싶은 열망이 생각보다 컸나 봅니다. 아이는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돈으로 대회 준비반 수업료를 내겠다고고 하였습니다.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저는 아이의 태도도 평소와는 다르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엄마 돈으로 억지로 떠밀려 다니던 때와 달리, 본인의 용돈 40만 원이 들어갔으니까요. 열심히 해주고, 대회에서도 좋은 경험을 하게 되면 얼마나 멋지게 용돈을 썼는지 알게 되리라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실효성이 있는 강력한 경제 교육이 아닐까요?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게 진짜 경제 교육
저희 부모님도 그러하셨지만 우리는 아이들에게 돈을 모으고 아껴 쓰라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불어나는 숫자만 보여주는 건 반쪽짜리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숫자가 가진 의미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어떻게 써야 나에게 이득이 되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겠습니다.
돈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부모가 주는 용돈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혹은 용돈을 다 써서 없으니 더 달라거나, 비싼 물건을 사달라고 조르는 일은 점점 줄어들겠죠? 엄마에게 무언가를 요청하기 전에 늘 그것의 가격이 엄마의 월급에서 얼마나 차지하는지 비율을 생각해 볼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고정 지출비, 생활비를 아이에게 알려 주는 것도 좋겠습니다.
우리 아들이 자신에게 투자한 용돈 40만 원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이번 겨울 방학은 그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