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랜드 놔두고 거길 왜 가?"
해외여행 다녀와서 "이번에 동물원도 다녀왔어"라고 하면 주변에서 꼭 돌아오는 반응이 있습니다.
"야, 비행기 표 값이 얼만데 그 아까운 시간에 동물원을 가? 용인 에버랜드만 가도 기린 있고 사자 있잖아."
틀린 말은 아닙니다. 맛집 하나 더 가기도 바쁜 시간에 굳이 동물원이라니요. 하지만 저는 아이랑 해외에 가면 박물관, 기념관 다음으로 꼭 챙겨 넣는 필수 코스가 있습니다. 바로 '동물원'입니다.
동물이 다 거기서 거기지 뭐 할 수 있지만 나라마다 동물원의 형태와 환경 그 자체뿐만 아니라, 거기서 기인한 동물들의 컨디션이 다르다는 알 수 있죠. 그리고 그 나라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결'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어른인 저조차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어?" 하고 입을 다물지 못했던, 싱가포르와 호주의 동물원을 한국의 대표 동물원과 비교해 보고자 합니다.

1. 대한민국: "친절한 설명과 가까운 관찰, 하지만..."
여러 나라를 다녀보니 한국 동물원만의 확실한 장점이 보이더군요. 바로 '디테일한 관찰'과 '친절한 교육'입니다. 사파리 버스를 타면 곰의 숨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사육사님의 설명이 쉴 새 없이 쏟아집니다. "이 친구는 몇 살이고요, 건빵을 좋아해요." 아이들이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들의 특징을 '지식'으로 배우기에는 한국만 한 곳이 없습니다. 가장 친절하고, 가장 가까우며, 가장 지식을 많이 전달해 줍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이 조금 불편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추운 겨울이나 푹푹 찌는 여름, 좁은 시멘트 바닥에 갇혀 있는 열대 동물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처연해 보일 때가 있거든요.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혀놓은 느낌이랄까요.
2. 싱가포르(만다이 야생공원): "압도적인 스케일과 정글 그 자체"
몇 년 전에 싱가포르를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녔습니다.
"야, 동물원은 싱가포르가 끝판왕이야. 거기보다 좋은 데는 없어."
싱가포르에는 동물원만 무려 4곳이 있는 데 이곳은 동물원이라기보다 거대한 정글 탐험 같았습니다. 특히 '나이트 사파리'는 정말 어메이징 한 경험이었습니다. 캄캄한 밤에 트램을 타고 가는데,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개미핥기가 철창도 없이 바로 옆을 지나가더라고요. 어둠 속에서 마주하는 야생동물의 포스는 정말 압도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리버 원더스'! 여긴 정말 강추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물고기 종류가 있다는 것을 여기에서 알게 되었죠.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고기 수 만도 어마어마했습니다. 수조가 아니라 그냥 강을 통째로 옮겨놓은 것 같았죠. 특히 통통배(아마존 리버 퀘스트)를 타고 수로를 지나가며 강 양옆의 동물들을 구경하는 코스는 아이가 제일 좋아했습니다. 마치 영화 속 정글 크루즈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 들었으니까요.
여기까지만 해도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래, 역시 동물원은 시설 좋은 싱가포르가 최고야.'
3. 호주: "남반구에서만 만나는 낯선 생명체들"
그런데 이번 호주 여행에서 그 생각이 완전히 깨졌습니다. 시설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호주는 아예 '사는 생물'이 다르더군요. 우리가 북반구에서 보던 동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오직 남반구 호주 대륙에만 존재하는 희귀한 동물들의 천국이었습니다.
① 시드니 페더데일: "코알라 엉덩이 만져봤니?" 시드니에 있는 '페더데일 와일드라이프 파크'에서 난생처음 코알라 보았습니다. 유료였기는 하지만 그 귀여운 코알라의 엉덩이에 손을 대고 사진을 찍을 때의 느낌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TV에서 항상 나무 위에 매달려 자는 모습만 봤는데, 내 눈앞에서 유칼립투스 잎을 오물거리는 녀석의 털을 만져보다니... 그 뭉실뭉실하고 따뜻한 체온이 손끝에 닿는 순간, 아이 눈이 휘둥그레지더군요. "엄마, 인형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어!"
② 웜뱃의 충격적인 비밀: "똥이 네모라고?" 그리고 저와 아이가 배꼽을 잡고 웃었던 동물, 바로 '웜뱃'입니다. 사실 웜뱃은 동화책에나 나오는 상상 속 동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실제로 짧은 다리로 뒤뚱뒤뚱 걷는 걸 보니 너무 귀엽더라고요.
하지만 진짜 충격은 따로 있었습니다. 웜뱃의 똥은 큐브(주사위) 모양이라는 것입니다. "에이, 설마 똥이 어떻게 네모나?" 의심하며 바닥을 봤는데... 세상에! 진짜 각이 딱 잡힌 네모난 변이 굴러다니고 있었습니다! (경사지에서 똥이 굴러가지 않게 진화했다나요?) 그걸 보고 아이랑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기념품샵에서 웜뱃을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죠.
③ 멜버른 문릿 생추어리: "Zoo와 Sanctuary의 차이" 멜버른에서는 근교의 '문릿 생추어리'라는 곳에 갔는데, 이곳은 'Zoo(동물원)'이라 부르지 않고 'Sanctuary(보호구역)'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었죠. 단순한 전시가 목적이 아니라, 멸종 위기에 처한 호주 토종 동물들을 지키고 번식시켜서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종 보전 센터'이자 '보금자리' 같은 곳이죠.
그래서인지 울타리도 거의 없습니다. 왈라비와 캥거루들이 강아지처럼 뛰어다니고, 아이들이 자유롭게 먹이를 줄 수 있습니다. 손바닥에 먹이를 올려놓으면 조그만 입으로 오물오물 받아먹는데, 아이가 너무 행복해해서 집에 안 가려고 하더라고요. 갇혀 있는 동물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동물의 집에 우리가 '놀러 간' 느낌. 그 평화로운 공존의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 나라의 '자연'을 읽는 박물관
흔히 해외여행을 가면 그 나라의 역사를 알기 위해 '박물관'은 꼭 가봐야 한다고들 하죠. 저는 '동물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어쩌면 더 생생한 '자연사 박물관'일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동물원은 대부분 타국에서 건너온 동물들이라 어딘가 모르게 우리네 풍경과 섞이지 않는 이질감이 듭니다. 하지만 싱가포르나 호주는 달랐습니다. 동물원 밖, 시드니 도심 공원에서도 앵무새와 이비스가 비둘기처럼 날아다니고, 멜버른 길거리에서 낯선 새소리가 들립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자연 박물관"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신다면, 일정에 여유를 두고 그 나라의 동물원에 한번 들러보세요. 박물관에서 유물을 통해 인간의 역사를 배우듯, 동물원에서 그 땅의 주인인 생명들을 만나며 그 나라가 가진 진짜 자연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