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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 약일까요, 독일까요?

by 단단맘_B제이제이 2025. 12. 19.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를 둔, '예비 초등' 맘들의 걱정 1순위는 무엇일까요? 한글 떼기? 연산? 물론 학습도 중요하지만, 엄마들의 마음을 가장 무겁게 짓누르는 건 단연 '학교생활과 교우관계' 일 것입니다.
"우리 애가 소심해서 친구를 못 사귀면 어쩌죠?"
"혹시라도 친구가 괴롭히거나 따돌리면 어떡하죠?"                                                             
"선생님 말씀을 잘 알아듣고 따라갈 수는 있을까요?"
이런 걱정 때문에 엄마들은 아이를 앉혀놓고 입버릇처럼 당부하곤 합니다.    
"학교 가면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되도록이면 사이좋게 지내야 해."                                   
"선생님 눈밖에 나는 짓은 하면 안 돼!”                                                                                       
혹은 불안한 마음에 이렇게 덧붙이기도 하죠.                                                                       
"친구가 괴롭히거나 선생님이 무리한 걸 시키면 엄마한테 바로 전화해."
엄마 입장에서는 아이가 낯선 정글 같은 학교에서 상처받지 않고 잘 적응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저는 이 말들이 아이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이자,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부모에게 늘 기대는 아이로 만들 수 있는 위험한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 마음의 방패가 될 지혜 두 가지를 여러 번 강조해서 설명하였고,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는 둘째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해주려고 합니다. 
첫 번 째는 Friend(친구)와 Classmate(같은 반 아이)는 동의가 아니라는 것, 두 번 째는 선생님도 완벽한 어른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한 1한년 학생들과 담임 선생님
즐거운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1학년 학생들과 담임 선생님의 모습

한국말 '친구'라는 단어의 함정

우리나라 말은 참 정이 넘치다 못해 경계가 모호합니다. 나이가 같거나 같은 반이 되면, 본 적도 없는 사이인데도 무조건 "친구"라고 부르게 하죠. 놀이터에서 처음 만난 낯선 애한테도 "가서 친구랑 놀아"라고 등을 떠밀고, 이름도 모르는 반 아이도 우리 반 "친구"라고 칭합니다. 하지만 영어권 문화에서는 관계의 깊이에 따라 단어를 아주 명확하게 구분해서 쓴다고 합니다.

  • Classmate (반 아이 혹은 동급생): 학교라는 시스템이 임의로 배정한,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는 사람. 
  • Friend (친구): 내가 선택했고, 마음이 통하고, 서로 아껴주는 소중한 사람.

저는 한국식 '모두 다 친구'라는 두루뭉술한 개념보다, 이 영어식 구분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아이의 멘털 관리에 좋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들에게도 이 차이를 명확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Classmate에게 필요한 건 '우정'이 아니라 '매너'

초등학교는 선생님이 늘 개입을 하여 중재를 해주는 유치원 같은 온실이 아닙니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 '작은 사회'입니다. 한 반에 20명이 모이면 나랑 성향이 안 맞는 아이, 말이 거친 아이,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아이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이때 엄마 말대로 "사이좋게 지내야 해"라고 입력된 아이는 엄청난 혼란에 빠집니다.
"나는 쟤랑 사이좋게 지내려고 노력했는데, 쟤는 왜 나한테 화를 내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이가 자신을 자책하지 않게 하려면, 기준을 명확히 잡아줘야 합니다. 저는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해 줍니다.
"학교에 가면 한 반에 20명 정도가 있을 거야. 그 아이들은 전부 네 '친구(Friend)'가 아니야. 그중 대부분은 그냥 '같은 반 아이(Classmate)'일뿐이란다."
"Classmate랑은 억지로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돼. 그냥 아침에 만나면 '안녕' 인사하고, 줄 설 때 밀지 않고, 뭐 물어보면 답해주고, 딱 그 정도의 '매너'만 지키면 돼."
이렇게 관계의 기준을 낮춰주면 아이는 마음이 훨씬 편해집니다. 누군가 나에게 쌀쌀맞게 대해도 상처받는 대신,
"어? 쟤는 그냥 나랑 안 맞는 Classmate구나. 매너가 좀 부족하네." 하고 쿨하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생기는 거죠.
 

내가 겪은 12년, 선생님은 '완벽한 어른'이 아니었다.

보통은 아이들에게 선생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선생님 말씀 잘 들어, 쓸데없이 이상한 질문은 하지 말고, 알아들었지?"라고 가르치는 게 대부분입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그것보다 아이에게 "선생님은 좋은 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어. 또 좋았던 분도 어느 날은 그렇지 않게 보일 때도 있단다. 그리고 우리는 선생님을 고를 수 없어. 그건 선생님도 마찬가지야. 선생님도 자기 반 학생을 고를 수 없어.”라고 말해 줍니다. 그냥 어느 날은 이유 없이 맑았다가, 또 어느 날은 폭풍우가 내리치기도 하는 날씨처럼 선생님의 기분이나 태도도 그날그날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죠.
우리가 갑자기 비가 온다고 하늘을 원망하며 울지는 않잖아요? 그냥 우산을 쓰거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죠. 저는 아이가 선생님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저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총 12년이라는 긴 학창 시절 동안, 안타깝게도 진심으로 존경하고 싶은 선생님을 단 한 분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금 어른이 되어서 돌이켜보면, 그때 그 선생님들은 대부분 본인의 사적인 감정을 필터 없이 그대로 태도로 드러내셨던 분들이었습니다. 어떤 날은 기분이 좋아서 너그럽다가도, 어떤 날은 개인적으로 안 좋은 일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화풀이를 하시곤 했죠. 심지어 훈육이라는 이름 아래, 체벌이 아닌 '폭행'에 가까운 매질을 당했던 날들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미리 단호하게 예방주사를 놓습니다.
"선생님의 기분이 너의 잘못은 아니야"
"선생님이 학교 규칙을 지키라고 하실 때는 반드시 따라야 해. 수업 시간에 떠들지 말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안 해야 해. 그건 학생의 의무야."
"하지만 선생님이 같은 상황에서도 평소와 다르게 조금 짜증을 내시거나 냉소적일 때는, 그건 너나 친구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냥 선생님이 오늘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신 거야라고 생각해 너무 마음에 담아두거나 '나 때문인가?' 하고 시무룩해지지 마. “
생님이라는 '역할’은 존중하되, 그분의 사적인 ‘감정'까지 내 아이가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확실하게 구분해 주는 것이죠.

진짜 '내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법

이렇게 Classmate(반 아이)와 선생님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적으로 조정해 주면, 아이는 오히려 학교생활을 더 단단하고 지혜롭게 해 나갈 수 있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애쓰느라 에너지를 낭비하는 대신, 나와 개그 코드가 딱 맞는 진짜 친구를 찾아내 깊은 정을 나누고, 나를 따뜻하게 이끌어주시는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면 그 행운에 진심으로 감사할 줄 아는 아이가 될 것입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 '학습 준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아이가 낯선 사회 속에서 사람에게 상처받지 않도록 '관계의 정의'를 다시 내려주는 일도 빠지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모두가 너를 좋아할 순 없어. 그리고 너도 모두를 좋아할 필요는 없단다. 그건 아주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거야."
이 한마디가 무거운 책가방을 멘 우리 아이의 작은 어깨를 훨씬 가볍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